자, 2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모두 기지개 한번 쭉 켜볼까요? 1편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상상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과 배신의 아픔을 견디시며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죄의 휘장을 쫙 찢어 '화목'하게 만드셨다는 사실을 확인해보았어요. 예수님의 양팔은 세상 그 어떤 죄인이라도 다 품어주실 만큼 넓다는 것도요!
그렇다면, 이토록 넓은 예수님의 팔에 안겨 인생이 완전히 박살 나고 뒤집어진 대표적인 죄인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신약 성경의 절반을 기록한 아주 위대한 사도가 그 주인공입니다!

제1장: 교회를 파괴하던 자, 사울(바울)의 등장
빛돌: 신약 성경의 절반을 썼다고요? 그럼 당연히 사도 바울이네요! 근데 바울은 처음부터 훌륭한 선교사님 아니었어요?
가브리엘라: 하하, 빛돌님. 바울의 과거를 알면 아마 깜짝 놀랄걸요? 사도 바울의 원래 유대식 이름은 '사울(Saulos)'이었습니다. 로마식 이름이 '바울(Paulos)'이고요. 청년 시절의 사울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사도행전 7장과 8장을 통해 살펴볼까요?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도행전 7:59-8:3)
사울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끔찍하게 혐오했어요.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 집사님이 돌에 맞아 피 흘려 죽어갈 때, 앞장서서 그 죽음을 마땅하다고 여긴 사람이 바로 사울이었죠.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사도행전 9:1)
그는 살기가 등등해서 교회를 뿔뿔이 흩어버리고, 파괴하며,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평화와 '화목을 깨버리는 일'에 앞장서는 잔인한 핍박자였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는 가장 악질적인 '원수'였죠.

제2장: 파괴자에서 '다리 놓는 자(Reconciler)'로!
가브리엘라: 그런데 그 사울이 다메섹(다마스쿠스)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러 가던 어느 날, 쨍하고 해 뜰 날이 아니라 쾅! 하고 천둥 벼락 같은 만남이 일어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도행전 9:4)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원수 사울에게 친히 빛으로 나타나 만나주신 거예요! 하나님을 대적하던 원수를 단번에 꺾어버리시고, 그 넓은 품으로 용서하며 품어주십니다. 이 놀라운 화목의 은혜를 체험한 사울의 인생은 완전히 뒤집어집니다!

"사울이...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사도행전 9:19-21)
솔아: 와, 진짜 소름 돋아요. 어제까지만 해도 교회 사람들을 잡아 죽이던 폭군이, 오늘부터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전도하고 다녔다니 사람들이 얼마나 어이없고 놀랐을까요?
가브리엘라: 맞아요! 예수님을 잡아 죽이던 청년 사울이, 훗날 예수님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십자가의 제물로 기꺼이 바치는 위대한 사도 '바울'로 변한 것입니다. 교회를 흩어버리고 파괴하던 자가, 이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는 완벽한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180도 바뀌어버린 것이죠!

제3장: 우리에게 주신 '화목하게 하는 직책'
가브리엘라: 예수님은 사도 바울에게만 이런 기적을 주신 게 아니에요.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도 엄청난 미션을 하나 주셨습니다.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18-19)
빛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요? 우리가 무슨 외교관도 아니고, 그게 정확히 뭐 하는 직책인데요?
가브리엘라: 아주 중요한 질문이에요!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본질이자 주제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위해 대신 피 흘리신 대속물(화목제물)이 되어 죄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셨다는 이 놀라운 팩트를 온 세상에 전하는 거예요.
그래서 멸망으로 달려가던 원수 같은 죄인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화목'하게 살아가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 그것이 바로 전도의 사명이자 우리에게 주신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랍니다.
이 일이 그냥 쉽게 된 게 아니죠? 예수님의 생명과 목숨이 통째로 희생되어 만들어진 길이니만큼, 우리도 이 사명을 생명 다해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제4장: 소금과 개미처럼, 콩가루 집안을 막아라!
가브리엘라: 그런데 여러분, 이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절대로 무인도에서 '혼자' 할 수 없어요. 구원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인 '교회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세상에 역사하시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만약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교회 안에서 맨날 서로 시기하고, 다투고, 미워하고, 뒤에서 험담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흔히 말하는 '콩가루 집안'이 되는 겁니다. 콩이 부서져 가루가 되면 뭉쳐지지 않고 흩날리는 것처럼, 교회가 완전히 무너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끊겨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강력하게 명령하십니다!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3)
우리가 서로 화목해야 하는 두 가지 절대적인 이유가 있어요. 첫째, 우리 옆에 앉아있는 각 사람은 예수님이 끔찍한 십자가의 '피 흘림'을 대가로 직접 사신 너무나 존귀한 형제자매들이기 때문이에요. 둘째, 하나님은 우리들의 사랑과 화목을 통해서만 이 세상을 향해 거대한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콩가루 집안이 되지 않고 화목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50)
솔아: 아하! 소금이 짠맛을 내려면 자기 형체는 완전히 녹아서 없어져야 하잖아요? 우리도 교회 안에서 내 자존심이나 고집을 소금처럼 스르륵 녹여 없애야 화목해질 수 있다는 뜻이군요!
가브리엘라: 와, 우리 솔아님 완벽해요! 맛을 내기 위해서는 조용히 자기를 녹여 희생하는 소금 같은 헌신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미물인 곤충을 통해서도 이 화목의 희생을 가르쳐주십니다.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개미와" (욥기 12:7, 잠언 30:25)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잠언 6:7-8)
잠언에서 개미 이야기를 왜 두 번이나 반복해서 썼을까요? 성경에서 반복은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뜻이죠! 개미들은 뒤에서 채찍질하며 감시하는 대장이나 사장이 없어도, 아무 불평불만 소리 없이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합니다. 왜요? '하나의 가족, 하나의 군체'니까요. 나를 내세우고 자랑하기보다 공동체(가족, 교회)를 위해 조용하고 성실하게 함께 희생할 때, 그곳에 진정한 화목의 꽃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 이야기의 결론 및 결단 (2편)

가브리엘라: 여러분, 오늘 2편 강연을 마무리하며 우리 삶을 십자가 앞에 비추어 봅시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파괴하고 콩가루로 만들던 핍박자였지만, 십자가의 사랑에 녹아내린 후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잇는 위대한 '다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의 붉은 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여러분! 이제는 여러분의 학교, 학원, 가정, 직장, 이웃그리고 교회 안에서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당당히 감당하십시오.
- 친구가 다툴 때 옆에서 부추기며 콩가루를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인가요?
- 아니면, 나를 녹이는 소금과 묵묵히 땀 흘리는 개미처럼 공동체의 평화를 지켜내는 사람이 될 것인가요?

내 자존심을 녹여 소금의 맛을 내고, 나를 자랑하지 않고 묵묵히 헌신하는 멋진 개미들이 됩시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세상 친구들이 다시 연결되고, 우리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사랑 넘치는 '화목한 가족'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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