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을 생각해보며

​[이야기 성경 1편] 내 인생을 바꿀 단 한 명의 멘토, 참된 선생이신 예수님

스토리윙 2026. 6. 27. 07:15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참된 선생이신 예수님'이라는 주제로, 요한복음 1장 35절에서 42절 말씀을 깊이 나누어 보려고 해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제가 가슴을 울리는 연설 하나를 들려줄게요.

​"당신의 이상을 달을 향해 발사하세요. 높고 고귀한 목적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실수해서 목표에 정확히 도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별들 사이에는 착지할 것입니다. 그 실패를 통해 차후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주저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이 멋진 연설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레스 브라운'이라는 분이 있어요. 그런데 이분은 사실 미국 빈민가의 버려진 건물 바닥에서 쌍둥이로 태어났고, 심각한 학습장애까지 있었어요. 똑똑한 쌍둥이 동생과 비교당하며 친구들에게 늘 '멍청한 쌍둥이'라고 놀림을 받았죠. 자존감이 바닥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선생님이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라고 하셨어요. 레스는 "전 못해요. 전 지적 장애가 있거든요"라며 거부했죠.
그때 선생님이 레스의 눈을 정확히 맞추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에 대한 누군가의 의견이 결코 너의 현실이 될 필요는 없단다." 이 한마디가 레스의 마음에 꿈이라는 희망을 심어주었고, 그는 역경을 극복하여 세계적인 연설가가 되었습니다. 저도 사람들에게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 봅니다.

​제1장: 교수, 교사, 그리고 참된 '선생'의 차이

​빛돌: 와, 진짜 멋진 이네요! 저런 선생님만 계시면 저도 서울대 갈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매일 학교 가면 졸리기만 하거든요.
​가브리엘라: 하하, 빛돌님. 우리가 흔히 가르치는 사람을 다 똑같이 부르지만, 한자의 의미를 보면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먼저 대학에 계신 '교수(敎授)'는 '가르칠 교'에 '줄 수'를 써요. 특정 학문을 깊이 연구해서 전문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해 주는 학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학교에서 만나는 '교사(敎師)'는 국가에서 정한 자격증을 가지고 유치원이나 초중고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공식적인 직업 명칭이죠.

​그렇다면 '선생(先生)'은 무슨 뜻일까요? '먼저 선', '날 생', 즉 '먼저 태어난 사람'이나 '먼저 깨달은 사람'을 뜻해요. 지식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과 인격을 형성하도록 돕는 내 인생의 진정한 '삶의 멘토' 역할을 하는 분을 말하죠.
​솔아: 아, 그래서 성경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많이 불렀던 거군요!

​제2장: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가브리엘라: 맞아요,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세례 요한의 두 제자(그중 한 명은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였어요)가 길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스승인 요한이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치자, 이 두 제자는 곧바로 예수님의 뒤를 졸졸 따라가기 시작해요.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요한복음 1:38)

​빛돌: 여기서 '랍비'가 선생님이라는 뜻이군요?
​가브리엘라: 네. '랍비(Rabbi)'는 히브리어로 '나의 위대한 분', '나의 스승'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에서 존경받는 율법 학자를 부를 때 쓰는 호칭이었어요. 신약성경에 기록된 헬라어로는 '디다스칼로스(Didaskalos)'라고 번역되는데, 단순한 지식 전달자를 넘어 진리를 가르치고 삶의 본이 되는 '권위 있는 인도자'를 의미합니다.
​놀라운 건, 제자들뿐만 아니라 그 당시 이스라엘의 모든 계층이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는 거예요. 구약성경의 율법을 세부적으로 가르치는 '서기관', 구전 전통과 일상의 거룩을 강조하던 '바리새인', 영적 세계를 안 믿던 귀족 계층 '사두개인'들까지 모조리 말이죠. ​

  •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마 8:19)
  •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 9:11)
  •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0:25)
  • 이 외에도 아픈 딸을 둔 회당장 (눅 8:49)
  • 외아들을 살려달라는 아버지 (눅 9:38)
  • 재산 분쟁을 호소하는 자 (눅 12:13)
  • 심지어 성전 건물을 자랑하던 제자 (막 13:1)까지 모두가 예수님을 "선생님!" 하고 불렀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이 호칭을 쿨하게 인정하셨죠.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 13:13)

​제3장: 교과서를 덮어라, 도덕은 책에 없다!

​가브리엘라: 그렇다면 참된 선생이신 예수님은 도대체 어떻게 가르치셨을까요? 여러분, 체육 시간에 농구 슛 쏘는 법을 칠판에 글씨로 빽빽하게 적어주면 슛을 잘 쏠 수 있나요? 아니죠! 체육 선생님이 직접 멋지게 슛을 쏘는 '시범'을 보여주셔야 훨씬 이해가 빠르잖아요. ​

어떤 분의 중학교 2학년 시절,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어요. 당시 학교에 '추남 김 선생님'이라 불리던, 누가 봐도 정말 못생긴 노총각 도덕 선생님이 계셨대요. 2학년 첫 도덕 시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교탁을 '탁!' 내리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교과서 덮어라! 도덕은 이 책 안에 있지 않다. 일 년 동안 너희는 진짜 도덕이라는 게 뭔지, 이 선생님의 삶을 통해 직접 알게 될 것이다!"
그 말씀이 얼마나 멋졌던지, 그날 이후 반 학생들은 선생님을 '추남'이 아니라 '대장'이라고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대요. 유명한 교육학자 마리아 몬테소리가 "우리의 할 일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돕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진짜 선생님은 책의 이론이 아니라 '삶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러셨어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 자리였죠. 당시 이스라엘은 샌들을 신고 흙먼지 길을 다녔기에 집에 오면 발이 아주 더러웠어요. 보통은 가장 신분이 낮은 종(노예)이 발을 씻겨주는데, 그날은 종이 없었어요. 제자들은 서로 '내가 더 높다'고 눈치만 보며 뻣뻣하게 앉아있었죠.
​그때 가장 높으신 선생님, 예수님이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신 뒤, 종처럼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하나하나 씻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 13:14-15)

​"내가 너희의 가장 높은 선생이면서도 이렇게 낮아져서 섬겼으니, 너희도 서로 섬겨라!" 예수님은 사랑과 섬김을 칠판에 적어주신 게 아니라, 삶의 행동으로 완벽한 시범을 보여주신 참된 멘토셨습니다.

​🏛️ 이야기의 결론 및 결단 (1편)

​가브리엘라: 여러분, 1편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내 인생의 진정한 '선생님'으로 모시고 있나요? 지식만 전해주는 학교 학원 선생님은 많지만, 내 영혼의 길을 알려주고 삶으로 사랑을 증명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앞서서 말씀 드린 안드레와 다른 제자처럼, "랍비여, 어디 계시나이까?" 질문하며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삶을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 잠깐 쉬었다가, 2편 이야기에서는 이 참된 선생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시범'을 보여주셨는지, 그리고 제자들의 태도가 어떻게 완전히 뒤집어졌는지 더 깊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2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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