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로마서 9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8장 마지막에서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외쳤던 바울의 목소리가 9장에서는 깊은 탄식으로 바뀝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그 좋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지옥으로 달려가는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유대인)' 때문입니다. 바울은 "차라리 내가 저주를 받더라도 내 민족이 구원받았으면 좋겠다"고 오열합니다. 그리고 구원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진흙을 빚는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선택)에 달려있다는 아주 깊고 무거운 진리를 선포합니다. 구원의 절대 주권이 펼쳐지는 현장으로 들어가 볼까요?

제1부: 내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 (1-2절)
가브리엘라: 8장의 환희와 완벽하게 대조되는, 바울의 가장 슬픈 고백으로 문을 엽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성령 충만한 바울에게도 숨길 수 없는 큰 근심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영어 성경(NIV)은 이를 'great sorrow and unceasing anguish(큰 슬픔과 끊임없는 고뇌)'라고 번역합니다. 잠깐 스치는 슬픔이 아니라,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항상 그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었다는 진실된 고백입니다.
빛돌: 헐... 8장에서 넉넉히 이긴다며 텐션 최고조였는데, 사도 바울의 마음 한구석에는 낫지 않는 아픈 상처(고뇌)가 계속 피를 흘리고 있었군요.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하시는 걸까요?

제2부: 내가 저주를 받을지라도 (3절)
가브리엘라: 바울의 심장을 찢어지게 했던 그 고통의 이유가 드디어 밝혀집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의 '골육의 친척'은 바로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구원만 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자기 자신이 '저주(헬라어: 아나테마, Anathema)'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영원히 끊어져 지옥에 가도 좋다고 절규합니다. 여기서 '아나테마'는 하나님께 바쳐져서 철저하게 파멸되고 버림받는 가장 끔찍한 저주를 뜻합니다.
솔아: 와... 진짜 충격이에요! "천국행 티켓 너희들 줄 테니까, 난 지옥 가도 돼!"라고 할 만큼 자기 민족을 뼈저리게 사랑했다는 거잖아요. 이기적으로 나 혼자 예수님 믿고 천국 간다고 좋아했던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져요.
제3부: 이스라엘이 받았던 엄청난 특권들 (4-5절)
가브리엘라: 바울이 그토록 안타까워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구원받기 가장 좋은 완벽한 특권을 이미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입양아(양자 됨), 말씀(율법), 거룩한 예배, 아브라함 같은 위대한 조상들까지 모든 VIP 혜택을 싹 다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인류를 구원할 그리스도(예수님)마저 그들의 혈통에서 태어나셨죠. 이렇게 떠먹여 줬는데도 예수님을 발로 차버렸으니, 바울이 가슴을 치며 통곡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빛돌: 진짜 금수저 중에 최고 영적 금수저였네요! VIP석에, 최고급 식사에, 프리패스까지 다 쥐여줬는데 스스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감옥(지옥)으로 걸어 들어간 꼴이니 바울이 답답해서 미칠 만하네요.

제4부: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6-7절)
가브리엘라: 유대인들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한 걸까요? 바울은 여기서 중요한 영적 기준을 제시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실패한 것(폐하여진 것)이 절대 아닙니다! 왜냐하면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야곱)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해서 다 진짜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많았지만(이스마엘 등), 오직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인 '이삭(Isaac)'에게서 난 자만 진짜 자녀로 인정해 주셨다는 역사적 팩트를 짚어줍니다.
솔아: 아하! 유대인들은 "우린 아브라함 피가 섞였으니까 무조건 천국이지!" 하고 으스댔는데, 하나님은 "DNA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약속(말씀) 안에 있는 사람만 찐 자녀야!"라고 커트라인을 정확하게 그어주셨네요.
제5부: 육신의 자녀 vs 약속의 자녀 (8-9절)
가브리엘라: 이 원리를 오늘날의 영적인 족보로 명확하게 번역해 줍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겉모습과 혈통만 유대인인 '육신의 자녀(Children of the flesh)'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 복음을 믿기로 약속된 '약속의 자녀(Children of the promise)'만이 진짜 자녀(씨)로 인정받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삭을 낳았던 것처럼, 구원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으로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빛돌: 모태신앙이라고, 부모님이 목사님이라고 무조건 구원받는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는 거네요. 내 마음속에 예수님을 믿는 진짜 '약속'이 있어야 합격 목걸이를 받을 수 있어요!
제6부: 리브가의 쌍둥이와 하나님의 목적 (10-11절)
가브리엘라: 바울은 아브라함을 넘어,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가 낳은 '쌍둥이' 이야기로 주권의 개념을 쐐기 박습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에서는 나쁜 짓을 해서 버림받고 야곱은 착해서 선택받았을까요? 아닙니다! 이 쌍둥이가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어떤 착한 일이나 나쁜 일(선이나 악)을 1도 하기 전에 이미 운명이 결정되었습니다. 여기서 '뜻(목적)'은 헬라어로 '프로테시스(Prothesis)'인데,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선택)이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부르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달려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솔아: 헐! 태어나기도 전이면 백지상태잖아요! 구원의 커트라인이 내 착한 행동(스펙)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미리 찜콩! 하시는 전적인 은혜에 있다는 게 확실하게 증명됐어요.

제7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12-13절)
가브리엘라: 쌍둥이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 보여줍니다.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당시 고대 사회의 법은 무조건 장남(큰 자)이 다 차지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룰을 깨고 "큰 자(에서)가 어린 자(야곱)를 섬기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미워하였다"는 진짜 증오한다는 뜻이라기보다, 히브리적 표현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덜 사랑했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빛돌: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장남 최고!"라는 규칙을 하나님이 보란 듯이 엎어버리셨네요. 구원은 세상의 상식이나 서열순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퍼포먼스 같아요!
제8부: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14-15절)
가브리엘라: 이쯤 되면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릴 것을 바울은 미리 알고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만 선택하다니, 하나님 불공평한(불의한) 거 아니에요?"라는 질문에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By no means)!"고 단호하게 답합니다. 하나님은 주권자로서, 자기가 불쌍히(긍휼히) 여기고 싶은 사람을 불쌍히 여길 고유한 권한을 갖고 계신다는 모세의 기록(출 33:19)을 가져옵니다.
솔아: 맞아요! 제가 길 가다가 불쌍한 길고양이 열 마리 중에 한 마리만 데려와서 키웠다고, 경찰이 저보고 "왜 아홉 마리는 안 데려왔냐, 너 나쁜 놈이다!"라고 체포할 순 없잖아요. 불쌍히 여기는 건 온전히 제 자유(은혜)니까요!
제9부: 원하는 자도, 달음박질하는 자도 아니다 (16-17절)
가브리엘라: 구원이 인간의 노력으로 쟁취할 수 없는 것임을 아주 명쾌하게 결론짓습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구원은 내가 "간절히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1등 하려고 땀 뻘뻘 흘리며 뛰어간다(달음박질)고 쟁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불쌍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자비(긍휼)' 때문입니다. 심지어 악당인 애굽 왕 '바로(Pharaoh)'조차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온 세상에 돋보이게 하기 위한 악역으로 쓰시기 위해 하나님이 직접 세우셨다고 선언합니다.
빛돌: 와! 인생이라는 거대한 영화에서 제가 조연일지, 주연일지, 심지어 악역(바로)일지 캐스팅하는 권한은 100% 감독님(하나님)한테 있다는 거네요. 제가 아무리 대본(달음박질) 열심히 외워도 감독님이 안 뽑아주시면 끝인 거잖아요!
제10부: 긍휼히 여기시고, 강퍅케 하시고 (18-19절)
가브리엘라: 하나님의 이 절대적인 권한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하나님은 원하시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원하시는 자의 마음을 딱딱하게(강퍅케, Hardens) 내버려 두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또 따집니다. "아니, 하나님이 내 마음을 딱딱하게 만들었으면서, 왜 나한테 죄지었다고 혼내(허물)나요? 하나님 뜻을 누가 이길 수 있다고!"
솔아: 저라도 그렇게 따졌을 것 같아요! "감독님이 나한테 악역 대본 줘놓고 왜 연기 끝났더니 뺨 때려요?" 하고 항의하는 거잖아요. 이 날카로운 질문에 바울은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제11부: 토기장이의 절대 주권 (20-21절)
가브리엘라: 바울은 인간의 건방진 논쟁을 아주 압도적인 비유 하나로 끝내버립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이 사람아! 네가 도대체 누군데 창조주께 말대꾸(힐문, Talk back)를 하느냐!" 바울이 호통칩니다. 진흙으로 도자기를 빚는 '토기장이(헬라어: 케라메우스, Kerameus)'가 같은 흙 한 덩어리를 떼어서 밥그릇(귀한 그릇)을 만들든 요강(천한 그릇)을 만들든, 그건 100% 토기장이의 '권한(Right)'입니다. 진흙 따위가 "왜 날 밥그릇 안 만들어 줬어!"라고 따질 수 없다는 것이죠.
빛돌: 헉... 완전 찍소리도 못 하겠네요. 피규어 조립하는 사람이 팔을 떼든 다리를 붙이든 그건 조립하는 사람 마음인데, 플라스틱 쪼가리가 "나 왜 이렇게 생겼어!" 하고 대드는 꼴이었어요. 제가 피조물(진흙)이라는 주제 파악을 확실히 하게 됩니다.

제12부: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 (22-23절)
가브리엘라: 토기장이의 비유를 우리의 구원과 심판에 직접 연결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 하리요" 악하게 살아서 박살 나기로 예약된 '진노의 그릇'들이 있는데, 하나님이 당장 안 부수고 오랫동안 참아주셨습니다. 왜요? 바로 우리처럼 영광 받기로 미리 세팅된 '긍휼(자비)의 그릇'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하고 위대한지 깨닫게 하시려고 그 악인들을 잠시 놔두셨다는 겁니다. 여기에 피조물이 무슨 토를 달겠습니까?
솔아: 아하! 영화에서 악당이 금방 안 죽고 끝까지 주인공을 괴롭히는 이유는, 그래야 나중에 주인공(긍휼의 그릇)이 구출받을 때 감독님(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스펙터클하게 위대한지 관객들이 확실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군요!

제13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24-25절)
가브리엘라: 그 귀한 긍휼의 그릇이 도대체 누구인지 정체를 밝혀줍니다.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영광을 받을 긍휼의 그릇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입니다! 놀라운 것은 콧대 높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전혀 상관없던 우리 같은 '이방인'들도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의 호세아 선지자도 이미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향해 '내 백성, 내 사랑'이라고 부르실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었죠.
빛돌: 와! 쓰레기통에 처박혀야 할 이방인(진흙)이었던 우리를 주워다가, 반짝반짝 빛나는 최고급 명품 그릇(긍휼의 그릇)으로 빚어주신 거잖아요! 토기장이의 솜씨와 은혜에 무한 감동입니다.
제14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 (26-27절)
가브리엘라: 이방인을 부르신 반면, 원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라 일컬음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버려졌던 이방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얻게 됩니다. 반면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해 슬픈 예언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의 모래처럼 수억 명이라도, 다 구원받는 게 아니라 진짜 믿음을 가진 소수의 '남은 자(English: Remnant)'만 구원을 받는다는 무서운 선고입니다.
솔아: 모태신앙이라고, 교회 마당 수십 년 밟았다고(모래알) 안심할 게 아니네요. 쭉정이들은 다 날아가고, 진짜 예수님을 가슴에 품은 알곡 같은 '남은 자(Remnant)'만 천국 창고에 들어간다는 팩트가 등골을 서늘하게 해요.
제15부: 남겨두신 씨앗 (28-29절)
가브리엘라: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결단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반드시 다 이루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 소수의 믿는 사람, 즉 '씨(Seed)'를 조금이라도 남겨두지 않으셨다면, 이스라엘은 불타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처럼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라는 뜻입니다.
빛돌: 밭이 다 불타버렸는데, 농부이신 하나님이 내년 농사를 위해서 주머니 속에 아주 작고 귀한 '씨앗(남은 자)' 몇 알을 몰래 숨겨두셨던 거네요! 그 씨앗 덕분에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지 않은 거였어요.
제16부: 행위에 의지한 이스라엘의 실패 (30-31절)
가브리엘라: 로마서 9장의 결론, 이방인은 구원받고 이스라엘은 탈락한 진짜 이유를 분석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참 아이러니하죠. 구원받으려고 노력한 적도 없는 이방인들은 '믿음' 하나로 의로워졌습니다. 반면에 평생 율법(의의 법)을 달달 외우며 착하게 살려고 발버둥 쳤던 이스라엘은 오히려 합격선(법)에 도달하지 못하고 탈락했습니다.
솔아: 완전 토끼와 거북이의 영적 버전이네요! 토끼(이스라엘)는 자기가 빠르다고(행위) 믿고 까불다가 탈락했고, 거북이(이방인)는 자기 느린 거 인정하고 하나님 등딱지(믿음)에 찰싹 붙어서 결승선을 통과해 버렸어요!
제17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 (32-33절)
가브리엘라: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켰는데도 탈락한 결정적 원인이 9장 마지막에 밝혀집니다.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는 딱 하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들의 잘난 '행위(스펙)'로 구원받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만한 유대인들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부딪히는 돌(헬라어: 스칸달론, Skandalon - 걸림돌, 장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돌(예수님)을 의지하고 믿는 자는 최후의 심판에서 절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위대한 선언으로 9장이 마무리됩니다.
빛돌: 아하! 헬라어 '스칸달론(걸림돌)'에서 스캔들이라는 말이 나왔군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힌 실패자로 보고 뻥 차버리려다가 자기들 발가락만 부러졌네요. 하지만 우리는 그 돌을 건축의 머릿돌(반석)로 삼았으니 평생 부끄러움 없이 안전한 겁니다!
이야기가 주는 교훈
가브리엘라: 동족을 향한 바울의 애끓는 눈물과,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선택)이 웅장하게 펼쳐진 로마서 9장이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깊이 다가오죠? 두 분은 오늘 무엇을 마음에 담으셨나요?
빛돌: 저는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마음대로 빚을 권한이 있다"**는 비유에 쾅 맞았어요.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 풀린다고 하나님께 따지고 힐문했던 게 얼마나 교만한 흙덩이의 투정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토기장이의 솜씨에 제 인생을 완전히 맡겨야겠어요.
솔아: 저는 "남은 자(Remnant)만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 무서우면서도 감사했어요. 모태신앙이라는 껍데기(모래)에 기대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붙잡는 '믿음의 씨앗'이 되어서 마지막까지 부끄러움 당하지 않는 남은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가브리엘라: 두 분의 묵상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정확히 인정하는 진짜 신앙이네요! 오늘 우리 삶에 적용할 꿀 같은 교훈들을 정리해 봅시다.
- 동족을 향한 눈물을 회복하라: 바울처럼 지옥으로 달려가는 가족과 친구를 위해 내 영혼을 걸고 애통하며 기도하는 마음(큰 근심)을 회복하십시오.
- 토기장이의 주권을 인정하라: 내 환경과 외모, 능력을 불평하지 마십시오. 나는 피조물(진흙)일 뿐이며, 나를 가장 선하게 빚으시는 토기장이(하나님)의 뜻을 신뢰하십시오.
- 행위가 아닌 은혜로: 내가 잘나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과 은혜임을 기억하며 교만을 버리십시오.
- 믿음의 반석 위에 서라: 내 의(스펙)를 의지하면 예수님이 걸림돌(스칸달론)이 되지만, 내 무능을 인정하고 엎드리면 예수님이 나를 지키는 든든한 반석이 되십니다.
이제 로마서 10장에서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는 기독교 최고의 영접 공식이 등장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가슴 벅찬 복음의 선포가 쏟아지는 곳! 계속해서 로마서 10장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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